사랑이 뭘까? 보고 싶고 껴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 한다면 굉장히 애매하다. 그 정도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사랑을 아무리 화가 나도 보기만 하면 웃음이 지어지는 걸 참을 수 없는 걸 기준으로 정의하고 싶다. 나는 내가 양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이 기준으로 따져보면 여성애자가 되나 싶었지만 잠깐 더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던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도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풀려버리는 마법 같은 걸 겪었다. 이 사람 이외에는 나는 야옹이를 제외하면 사랑하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을 금방 좋아해버리는 이상한 특징이 있다. 그게 일시적인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이나 몇 주 정도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믿어버리지만 이성적으로는 “얼마 안 가면 사라질 가짜 감정이야” 하는 식으로 참느라 굉장히 이상하다. 애초에 그게 좋아하는 감정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울증 때문에 감정에 상처를 입은 건지 원래부터 이상한 건지 모르겠고 내 감정은 그냥 전체적으로 이상하다.

이 “좋아하는 걸로 착각하는 기간” 때문에 남들이 고생한 적도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그냥 잠깐 좀 이상한 정도로 지나갈 수 있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할 땐 사고가 난다. 한 명은 내가 진짜로 좋아했던 것 같기는 한데 식어서 딱딱해 진 상태가 되어버렸고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오해가 생겨서 지금도 나를 싫어한다. 다른 한 명은 그 기간에 아예 내가 먼저 들이대버렸고 사귀던 도중 원상태로 돌아와서 헤어졌다.

사랑하는 감정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게 선천적으로 모자란 것 같다. 가족이 죽어도 “이젠 대화 못 하겠네” 정도의 생각으로 그치거나 심지어는 “아 이제 귀찮은 일 없어졌다”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전부다. 슬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 범위를 벗어나 내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고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 봤다. “나는 이제 누구랑 대화를 하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이런 일에 굉장히 이성적이게 되고 감정적인 반응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래왔고 그 때는 분명 우울증이 아니었다. 가끔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연애를 하는 도중에는 우울증 증세가 없었다. 다른 기쁜 생각을 하느라 바쁘면 증세가 사라지나보다. 그런데 요즘은 같이 즐겁게 맛있는 걸 먹고 놀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지고 내 세상이 영원히 끝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가끔씩 생긴다. 역시 일과 환경 때문에 그런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게 더 악화 되고 인간적인 삶이 아예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에 빠지는 순환이 일어나버린다. 아직 1월인데 시간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

Ĉu mi havas sentojn? (eo)
Do I have feelings? (en)
나에게 감정이 있을까?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