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사를 했다. 난 애초에 가족들과 사는 게 전혀 안 맞아서 집을 나온 건데 한 달동안 집에서 지내면서 내가 왜 집을 나왔는지 하나하나 기억이 나게 되었다.

식사

밥 먹는 시간이야 다르다 치지만 밥을 그냥 먹지 말라는 듯한 태도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났다. 밥을 먹으려면 일단 방에서 나가기 전에 벗어놓은 옷도 입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어야 한다. 대충 1~2분이면 끝나는데 20초만 돼도 밥 먹으러 오랬는데 왜 안 오냐며 신경질을 낸다.

내가 못 먹는 음식들도 있고 안 먹는 음식들도 있다. 뭐가 되든 나는 먹기 싫은데 자기한테 맛있는 건 나에게도 맛있다고 생각하는지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밥그릇에 올려버린다. 내 밥그릇을 누가 건드리는 건 진짜 못 참겠다. 그냥 버리고 먹는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느냐?”니 나에겐 맛이 없고 먹다가 배탈난다.

가끔 기분이 안 좋으면 밥을 빨리 못 먹을 때도 있다. 대부분 집에서 밥 먹기 직전에 기분이 나쁜 이유는 가족 때문인데 밥을 왜 그따위로 먹냐며 밥그릇을 뺏어서 밥상 밑으로 집어 던진다. 그렇지 않을 때는 동생을 불러서 내가 보는 앞에서 “저새끼 삐졌어”라는 둥 속삭이고 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난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청각장애인도 아니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본인 앞에서 저따위로 행동하면 안 된다. 내가 여태까지 밥상을 엎어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이사, 청소

내 물건은 내가 알아서 나만의 위치에 놓는다. 내 방인데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위치를 마음대로 바꿔버린다. 중학생 때는 나갔다 왔더니 방 구조가 바뀌어 있었는데 다음날 책가방이 안 보여서 어딨냐고 물어보니 “그걸 니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란다. 치워버린 본인이 알아야지 내 물건이라고 위치를 내가 아나?

이삿짐을 싸거나 청소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든다. 책상 위에는 깨지거나 망가지기 쉬운 물건들도 많지만 무조건 바닥으로 쓸어던지고선 필요한 물건만 주으라고 한다. 방금 땅으로 떨어지면서 필요 없는 물건으로 변해버렸다.

오늘도 이사 오면서 구체관절인형을 가방에 쳐박길래 얼른 꺼내서 수건 같은 천 등에 싸서 넣으려고 했는데 인형을 싸매자마자 뺏어서 가방에 또 던지려고 하는 것에 화가 터져버려서 “알지도 못하면 제발 건들지좀 말라”고 소리쳤다. 뭔가 찜찜했는데 집에 와 보니 인형 신발이 없어져 있었다.

길 찾기

차로 이동을 하기 위해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라길래 ~대학교 ~문을 검색했다. 어차피 학교 문앞이 집이고 그게 검색하기도 쉬우니까. 그런데 그걸 입력하자마자 왜 번지수를 찍지 않고 그렇게 찍느냐고 화를 냈다. 내가 살던 집도 아니고 이제 살 집인데 주소를 모를 수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그렇게 찍은데 대체 어디가 잘못 된 일이냐고 따졌다. 택시를 탔어도 ~대학교 ~문이라고 말하지 주소를 말하지는 않는 게 보통이다. 그랬더니 자기가 살 집인데 주소도 모르냐고 화냈다. 또 너무 화가 나서 “그냥 ~대학교 ~문 찍었으면 됐지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소리질렀다. 결국 목적지만 가면 되는 건데 본인의 방식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왜 그렇게 하냐고 화를 낸다.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다.

집 밑에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에 주차하라 했더니 “거기 주차 못하거든~?” 하고 굉장히 짜증나는 말투로 대응했다. 꼭 이렇게 사람을 화나게 하는 말투만 골라서 쓴다. 집주인이 오자마자 집 밑에 주차장 있는데 왜 그렇게 멀리 주차하냐고 그랬지만 몰라 난 이사만 끝내고 이제부터 내 집에 살면 끝난다.

나는 나만의 사는 방법이 있고 남들보다 비효율적으로 사는 부분도 물론 있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르기만 할 뿐인 모든 차이마다 왜 그렇게 사냐고 구박을 하는 저런 사람과는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집을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한 사람 때문에 아예 혼자 살자고 나온 거였는데 그 사람은 이제 없어서 솔직히 좀 편해졌다. 제일 큰 문제가 사라졌더니 상대적으로 작았던 다른 큰 문제들이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한다. 살면서 나랑 전혀 안 맞는 사람과는 굳이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을텐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묶이는 게 정말 싫다.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

Mia vivo (eo)
My life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