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 거 아닌 물건을 굉장히 소중한 물건인 양 오래 보관하는 습관이 있다. 내 작은 보물상자 안에는 2009년 쯤인가 중학교 친구가 블로그 주소를 적어 준 메모용지도 들어있고 길 가다가 예쁜 나뭇잎을 보고 장난삼아 “이거 선물이야”라는 말과 함께 건내 준 그 나뭇잎도 들어있고 선물 받았던 초콜릿 같은 것들도 포장지 전체가 다 들어있다. 주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로 별 거 아닌, 하루 안에 버리는 게 거의 당연한 물건들이 보물상자에 들어있는 건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걸 대체 왜 가지고 있냐며 소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대부분 버리는 게 정상적인 물건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뭣도 모르고 버리는 일이 가끔 있다. 애인에게 선물 받은 시계도 시계가 고장날지언정 케이스는 영원히 보관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내 악세서리들을 넣는 데에 쓰고 뚜껑은 버려서 엄청 화가 난 적도 있다. 그 이후로는 열쇠로 잠그는 형식의 철제 상자에 이것저것 넣고 있는데 넘쳐버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기억력은 그 물건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물건들을 보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나하나 기억이 나고 대부분 그게 과거라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한다. 반대로 그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일조차 까먹어버리기 때문에 보기만 하면 혼자 슬퍼지는 이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게 나에게 더 이득이다. 문제는 그 물건을 보자마자 추억들이 생각이 나는데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버릴 수가 없다는 거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가 가끔씩 버리기라도 하겠지만 철제 상자에 들어 간 이상 내가 스스로 버리기 전까지는 버려질 수가 없다.

방금 좋은 방법이 생각나긴 했다. 그 상자 자체를 잃어버리면 되는 거 아닐까?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대충 기억이 나지만 통째로 잃어버리면 기억 나는 그것들만 아쉬울 것이고 그마저도 곧 잊어버릴 것이다. 문제는 그 열쇠를 볼 때마다 상자가 기억 날 것이고 난 역시 그 열쇠가 상자에 대한 추억이기 때문에 열쇠를 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많은 물건들이 열쇠 하나로 줄어든다면 나름대로 이득 아닐까?

사실 그 추억들을 잃어버리는 데에 둔해진 것도 이유가 있다. 예전엔 정말 그 물건들이 소중했고 그 물건들에 관련 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을 했지만 애인이 생기면서 머리가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추억들이 쌓였다. 그러면서 잊는 거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다시 애인도 없고 친구마저 만날 일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하기 때문에 또 뭔가 하찮은 선물 하나를 받아도 집까지 가져가서 보관을 하게 된다. 대부분은 선물의 포장지다.

이 추억을 기억하는 방식을 디지털로 바꿔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포장지를 보관하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면 보관하기도 쉽고 사진은 온갖 곳에 복사가 되어 잃어버릴 일이 거의 없기도 하다. 하지만 습관은 습관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계속 포장지를 모을 것 같다.

Malnovaj memoroj (eo)
Old memories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