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9년도 마지막 4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 한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본다.

취직

우울증을 비롯한 무기력증 때문에 취직을 못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안 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는데 지원서를 써야 취직을 하든 말든 할텐데 무기력하니 지원서를 쓰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원서도 안 쓰고 취직을 해버렸다. 예전에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면서 가까워 진 분이 “아는 분이 프로그래머 구한다는데 아직 일자리 못 구했으면 ~” 하는 연락을 주셔서 나는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는데 병특이 되는 곳이냐 물었고 된다기에 바로 연락을 했다.

사실 내가 취업을 하기 힘든 이유는 트랜스라는 것인데 화장실도 문제가 있고 그 이전에 프로그래머는 밖에 나설 일이 없고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는 직종인데도 회사의 이미지나 그런 곳에 영향이 간다고 꺼리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여긴 괜찮았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화장실에 편하게 갈 수 있고, 내 법적 실명이 아닌 정아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곳에서 불릴 수 있다(물론 법적인 계약서는 실명이지만).

사람들도 부드럽고 회사 자체도 마음에 든다. 서울로 취직을 했는데도 그 욕이 저절로 나오는 출근 지하철을 안 탈 수 있다. 밥도 다 사 주니까 생활비가 줄어드는 것도 있고.

병원

취직을 굳이 서울권 위주로 알아 본 이유 중에 하나가 병원이었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단을 받고 제대로 처방 받은 약을 먹으려고. 그래도 또 전화를 무서워 해서 전화를 못 하다가 이번 주에 드디어 전화를 했다. 결과는 이번 주는 이미 다 끝나서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는 거였지만 나에게는 큰 발전이고 아무래도 월요일에 다시 전화를 해서 예약을 제대로 잡을 것 같다.

외로움

사실 다시 집에서 해방되고 혼자 산다는 게 마냥 즐거울 줄 알았다. 그런데 서울에 오고나서는 마땅히 산책을 할 곳도 안 보이고 친구도 하나도 없고 외로웠다. 거기다가 사소하게 안 좋은 일들이 하나둘 겹치니까 울고 싶을 정도였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다. 일단 종교인들은 나를 보고 긴 머리의 남자로 인식하는지 음악을 하냐면서 말을 걸어오는데 처음 보는 사이에 외모만 가지고 음악을 하냐고 묻는 건 진짜 상처가 된다. 그리고 아저씨나 고딩들이 “와 씨발 저게 남자라고?”라고 다 들리게 말하면서 지나가는데 다 죽여버리고 싶다. 나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니까 다 들리게 말을 하는 거지. “와 저 사람 조폭이라고?”라는 말을 절대 안 들리게 하는 거랑 대조적이다.

회사에서 맡은 일도 좀 외롭다. 나는 신입이니까 모르는 게 생기고 막히면 나보다 먼저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위치인데 내가 맡은 일은 어째 연구소와의 인연인지 내가 앞장서서 길을 찾는 류의 일이 되었다. 다른 외적인 외로움과 겹치니 너무 슬퍼서 고민 하다가 위에 이야기를 했다, 너무 힘들다고.

나와 그 상사는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회사 안에서 딱 둘만 사용 가능한데 그래서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에스페란토로 털어놨는데 이게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일단 둘만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생기는 유대감, 그리고 외국어를 사용하면 모국어에 비해서 말하기 부끄럽지 않아진다. 그래서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었고 결국 위로 받다가 울어버렸다. 평소엔 아무리 울고 싶어도 눈물이 하나도 안 나오는데 손목에 눈물이 뚝 떨어지니까 얼어있던 내 몸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